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문단 편집) === [[서울특별시]] ===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구세대를 대변하는 [[대한민국의 보수정당|보수정당]]과 신세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민주당계 정당]]의 세대 대결의 씨앗이 된 선거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한나라당계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지역대결 양상이 강했다. 물론 1990년대 당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세대 대결이 없지는 않았지만, 20대와 30대 표층이 민주당계 정당으로 한데 모아지지는 않았고, 제3후보로 갈라지는 경향도 같이 보였으며 [[경상도]]와 [[충청도]], [[전라도]]에서는 젊은 층이라도 지역 정당에 동조화되는 경향을 보였기에 세대 대결의 정도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2002년 지선부터 싹트기 시작한 세대 대결은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선거는 같은 해 겨울에 이회창과 노무현이 맞붙었던 [[제16대 대통령 선거]]부터였다.] [[서울특별시장]] 선거도 격전을 벌였다. 386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었던 [[새천년민주당]] [[김민석(1964)|김민석]][* [[철새(정치)|철새]]라며 놀림받기 전의 김민석은 굉장한 [[정치인]]이었다. 30대였음에도 불구, 김대중과 민주당의 적자라는 호칭으로 불렸으며 차차기 지도자급 No.1이었다. 서울시장 선거 [[낙선]] 이후 후단협 과정에서의 엇박자로 김민'''새'''라고 놀림받으며 몰락했다가 서울시장 낙선 18년 후인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에서 자신을 재선 국회의원으로 키워주었던 [[영등포구 을]]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따내 출마했다. 결국 영등포구 을에서 당선(3선)되어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과 [[한나라당]] [[이명박]][* 우리가 아는 '대통령' 이명박 맞다.] 후보가 나와서 뜨겁게 맞붙었다. 당시 김민석은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대세론을 형성한 [[이인제]]와 격차를 좁힐 정도로 전도유망한 정치인이었다. 다만 나이가 안 되어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대선]] 출마는 포기했고[* 규정상 한국 대통령 선거는 선거일 기준 만 40세 이상부터 출마가 가능한데, 이 때 김민석은 만 40세가 되기 한참 전이었다. 2020년대 초반의 [[이준석]]과 비슷한 포지션.], 원래는 중앙정치계에 계속 머물 계획이었지만, [[고건]]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난 이후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유일하게 이명박을 앞지르는 후보가 바로 본인이어서 출마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민석 캠프는 당시로선 낯선 개념인 '생활 정치'를 표방하며 승기를 잡는가 했지만 곧, 새천년민주당 지도부의 비리가 탄루되어 대세를 굳히지 못했다. 결국 9% 차이로 패했지만, 여타 수도권 후보들이 20%대 차이로 줄줄이 패배한 것을 볼 때 선전한 셈. 당시 여론조사 초반에서부터 오차범위 내로 나타나 치열한 경합이었고, 선거전에 돌입하면서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자 판세는 더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져들었다. 이명박 후보는 '''[[청계천]] 복원공사와 [[중앙버스전용차로]] 제도 시행'''을 내놓으면서 분위기를 잡았고, 김민석 후보는 이에 질세라 [[서울/강남|강남]]과 [[서울/강북|강북]]을 비교하며 '''강북지역 재개발'''을 하고 이에 따른 재원은 지방세법 개정을 통해 세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184796|기사 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0201173|기사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514877|기사 3]]. 또한 김민석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각종 의혹들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이명박 후보를 공격했다. 그런데 정작 선거날에는 [[FIFA 월드컵]] 분위기에 밀려서 투표율이 서울시에선 45.7%밖에 안 나왔고(...) 특히 민주당 우세 지역인 강북 지역 투표율은 40% 초반대에 머무르는 등 김민석 후보한테 유리할 수 있는 요인이 전부 떨어져나가버리고(...) 결국 이명박 후보가 52% vs 43%로 승리하였다. 마이너한 이야기지만, 진보 계열에서는 "옥석논쟁"도 있었다. 청렴한 [[공무원]] 출신의 [[이문옥]] 민주노동당 후보와 [[김민석(정치인)|김민석]] 새천년민주당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해야 하냐는 이야기인데, [[키보드 워리어]]의 달인 [[진중권]]과 [[강준만]] 교수([[인물과 사상]] 편집자)가 제대로 맞붙었다. 물론 이문옥 후보의 실제 득표는 겨우 2.52%(8만8천표)에 불과했다. [[사회당(1998년)|사회당]]의 [[원용수]] 후보 역시 TV토론에 나와 민노당과의 차이점을 부각시켰는데, 이때 [[이명박]] 후보는 "저는 사회주의잡니다"라는 원 후보의 말에 "이 얼마나 좋습니까? 토론도 하고."라는 발언으로 받아쳤다. 원 후보는 역대 선거를 통틀어 '[[종북]]'이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